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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망하는 가난한 마음이여 복되도다” 마 5:1-12, 강인국목사,
2021.5.2
네로 황제의
스승인 세네카는 예수님 보다 2,3년 먼저 태어났고, 세네카의
행복론은 매우 유명하다.
예수님 당시는 로마제국의
전성기로서 헬라문화가 발달한 시대였다. 당시 헬라 세계에는 행복이란 무엇일까라는 화두가 대세였다.
예수님 300 여년 전에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에
이르는 길>에 대해서 말했고, 예수님 오시기 100 여년 전의 사람인 로마의 철학자 시세로는 <행복의 조건>에 관해서
말했고, 예수님 당시에는 세네카의 <행복론>은 매우 인기가 있었다.
예수님은 참된 행복을
말해 주기 원하셔서 팔복에 대해서 말씀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사용하신 이 “복”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마카리오이(makarioi) 인데, 당시의 철학자들이 일상적으로
쓰던 “행복” 이라는 단어이다. 예수님께서 당시 헬라 전체에 퍼져있는 마카리오이를 차용한 것은 천국
백성을 위한 행복론을 정립하기 위한 목적이었을 것이다.
이것을 당시 상황 속에서
해석한다면, “행복한 사람은 심령이 가난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팔복은 <예수님의
행복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첫번 째 복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주님은 심령이 가난한 것이
복이다고 말씀하신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성경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앞뒤 문맥을 보아야 한다. 그런데, 앞뒤 문장에 보면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을 설명하는 것이 없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
그래서,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의 의미는 개인에 따라서 여러가지 의미로 생각해 볼 수 있다.
1)
가난한 마음은 마음이 겸손하다는 의미일 수 있다. 2) 가난한 마음은 욕심이 없는 마음일 수 있다. 3) 한자어로
청빈이란 단어는 깨끗한 가난이란 의미이다. 그런 단어와 연결해 보면,
가난한 마음은 깨끗한 마음을 의미할 수 있다. 4) 작은 것에 감사하는 자족하는 마음일까? 5) 무소유의 마음일까? 이런 말들이 다 가난한 마음을 의미할 수
있다.
**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는 가난한 마음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 우선, 단어들
중에서 가난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프토코스 이다. 이는 움크려 있다,
구걸하다는 의미로서 극심한 가난, 파탄난 가난을 의미한다.
모든 것을 빼앗기고, 병까지 들어서 타인의 도움없이는 살 수 없는 절망적인 빈곤, 타인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며 업드려 있는 상태를 말한다.
*
계 3: 17에서 예수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데 말씀하신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
예수님께서는 부자는 모든 것이 부요해서 부족함이 없고 혼자서 얼마든지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가난한 자는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어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사람임을 알수 있다.
**
그래서, 심령이
가난하다는 의미는 영적세계를 찾고 하나님을 갈망하는 마음을 의미한다.
가난한 마음은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갈구하는 마음을 말한다.
*
시편에 보면,
하나님을 갈망하는 마음을 잘 표현한 시가 있다.
시편 42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무더운 여름철에 목마른 사슴이
숨을 헐덕이며 시냇물을 찾아 헤매는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시편 기자는 목마른 사슴처럼,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도움을 갈망한다.
시 63:1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다윗은 자신의 곤핍한 환경
때문에 간절히 하나님을 찾았다. 그래서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의 도움을 경험했고, 일생 동안 하나님을 갈망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 시편 120-134편 까지, 이 14편의
시에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부제목이 붙어있다.
이 시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 성전을 향해 갈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며 이 시들을 암송했다.
이 시들은, 예배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보여준다.
* 나는 중학교 때부터 하나님은
계시는가? 죽음 이후에는 어떤 세계가 있을까? 천국은 있는가? 영적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알고싶은 열망 때문에 고민하고 사색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의 십대는 영적세계에 대한
궁긍증으로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스님들이 도를 닦기 위해서 산속에 칩거하듯이, 나는 작은 방에서 불도 켜지 않고 홀로 앉아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한번은 나의 그런 모습을 본
아버지가 말씀하기를 “소가 물 웅덩이이 쳐다 보듯이 뭘 그렇게 멍하니 있느냐?”고 말씀하셨다. 나는 영적세계에 대한 생각으로 밤을 새운 적이 몇번
있었다.
나는 하나님에 대한 호기심과
열망 때문에 신학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신학대학을 다니며
하나님에 대해서 공부하여도 그 영적 열망감은 충족되지 않았다. 나는 하나님을 지식적으로는 배웠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의 마음은 더욱 공허해
졌다.
나는 신학대학 졸업반이 되어서, 목사가 되기 위해서 신학교를 가야 하는데,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실제로 만났는데, 그리고,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났다고 간증하는데 왜 저는 한번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합니까? 저들은 누구고, 나는 누구입니까?
왜 저들은 되고, 나는 안됩니까?
제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저는 신학교에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목사가 되기 원하시면 저를 한번만 만나 주십시오. 저는 그렇게 기도하고 1982년에 온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왔다. 나는 미국 LA에 와서 밤새도록 오피스 건물들과 화장실을 청소해
보고, LA 공항을 청소하면서 생활을 영위하였다.
나는 아내 그레이스와 함께 아침 식사를 파는 작은 커피샵을 운영했다. 나는
사업을 할수록 인생의 허무감은 더 강하게 몰려왔고, 하나님을 열망하는 마음은 더 커져갔다.
그러던 중에, 1984년 LA 올림픽이 열려서
LA 전체가 열기로 가득차 있었다. 나는 커피샵에서일하다가 아내 그레이스에게 아무 말을
하지 않고 가출을 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나는 홀로 예배당에 들어가서
기도했다. 하나님, 한번만 하나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성경에 나타나신 그 하나님을 한번만 실제로 만나기를 소원합니다. 제가
부자가 되지 않아도 좋습니다. 제가 성공한 사람이 되지 않아도 좋습니다.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을 한번만 만나기 소원합니다. 그렇게 간절히
하나님을 갈망했다. 오후 2시 정도에 교회에 갔는데 저녁
시간까지 기도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갈망하는 한 죄인을 만나 주셨다. 그 때에 나는
내 몸에 있는 죄와 몇 가지의 질병이 불타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했다.
1984년에 나의 공허한 영혼 속에서, 화려한 영혼의 올림픽이 내 마음에서 일어났다. 1984년 LA 올림픽은 지금까지 개최된 올림픽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올림픽이었다고 한다.
그 날은 내 인생 최고의 올림픽이었다. 내 인생은 그 날 이전과 그 날 이후로 나뉘어진다.
나의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기도의 그릇을 채웠더니, 하나님께서 만나 주시고 은혜를 베푸셨다.
나는 매~우 미천하고 죄 많은 사람이다. 제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갈망하는 마음 단 그 한가지 밖에 없었다.
* 독일의 철학자인 헤겔(Hegel)은 그의 책 <변증법>에서 ‘양질전환의
법칙’(The law of the transformation of
quantity into quality 을 말한다. 양이 쌓여서 누적되면 어느 순간 질적인 변화가 이루어진다는
이론이다. 저는 이 이론을 갈망과 기도의 법칙에 적용해 보고 싶다. 우리가
하나님을 갈망하는 마음이 충분히 쌓일
때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셔서 우리에게 놀라운 질적인 변화가 있게 하신다.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를 바쳐 올려서 기도의
그릇이 차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해 주셔서 우리에게 혁명적인 믿음의 변화가 있게 하신다.
우리의 공허한 마음을 하나님을 향한 갈망으로
가득 채울 때에, 하나님께서 은혜로 채워 주신다.
*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 부터 하나님을 갈구하는
존재이다.
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나면서 부터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만나기를 갈구한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수 많은 종교가 있다.
* 하나님을 누구를 만나 주시는가?
시 14:2에서,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신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찾는
자를 찾으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을 갈망하는 사람을
결코 버려 두시지 않으신다.
* 그러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하나님을 갈망해야 하는가?
파숫군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 간절히 주를 갈망해야 한다(시 130:6), 갓난 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사모하듯이 하나님을
사모해야 한다(벧전 2:2), 농부가 비를 기다리듯이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해야 한다(약 5:7).
결: 이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는ep, 사람의 마음에는 절대적인 공허함이 있다. 절대적
공허함이란 말은 제가 지어본 단어인데, 이 단어를 사용한 분이 계시는지 검색해 보았는데 아직은 없었다.
그런데, 그 개념을 말한 사상가는 있다. 누구라는 말씀드렸는가? 프랑스의 파스칼이다.
파스칼의 말을 다시 한번
더 리마인드해 드린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오직 창조주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만이 채울 수 있는, 하나님이 만드신 텅빈 공간이 있다. ”
There is a God-shaped vacuum in the heart of each man which cannot be satisfied by any created thing but only by God the Creator, made know through Jesus Christ.”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이
절대적인 공허감은 오직 하나님을 통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채울 수 있다.
혹시, 영적 갈급함으로 목마른 분이 계시는지요? 당신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간절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반드시
하나님께서 당신의 공허한 마음을 은혜로 채워 주실 것입니다.
혹시, 영적 갈망으로 가난한 마음을 가지셨는지요?
당신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간절함으로 하게 하나님께 간구 하십시오. 반드시 주님께서 당신의 아프고 외로운 마음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