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적된
죽음, 하나님의 구원/ Targeted death, God's
salvation”, 마태 2:12-18
오늘 본문에 보면 헤롯 왕이 등장한다. 헤롯 왕에 대해서 잠시 알아보자.
헤롯왕은 성경에 나오는 왕 들 중에 가장 악한 왕 중의 한
사람일 것이다.
그는 유대인과 에돔인의 피를 가진 당시 유대 총독인 안디바의
두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정치적 술수가 특출해서 로마 황제의 신임을 얻어서 약간 25세에 갈릴리지방의 총독이 되고 약간 30세에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 된다.
* 헤롯
왕의 치적
1. 그는 Herod the Great로 불리울 정도로 정치를 잘 했고, 피지배국과
융화하는 정치를 했다.
2. 그는 백성들에게 세금을 지나치게 부과하기도 했지만, 경제가 어려울 때에
세금을 감면시켜 주면서 피지배국인들의 인기도 얻었다.
현대에도, 대통령이 세금만 조금 감면해 주어도 정치 잘한다고 칭찬한다.
3. B.C. 25경에
그 지방에 극심한 기근이 들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사제를 털어서 곡식을 사서 백성들을 구제하기도
했다.
4. 그는
대단한 건축가였다. 궁전, 도시, 원형 경기장, 기념비, 성채
등을 건축했다.
특히 그는 유대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그 성전을 건축했다.
성전의 역사: 모세의
성막이 원형이다 -> 첫번째 성전, 솔로몬의 성전, 파괴(B.C. 587년 바벨론의 침공) -> 포로귀환 후에 두번째 성전 건축인 스룹바벨의 성전, 약 500년간 성전으로서의 기능, 헬라와 로마의 침공으로 황폐화 -> 세번째 성전, 헤롯의 성전: 완공기간이 무려 88년이 걸린 가장 아름답고 웅장한 성전이었다. 성경에서도 제자들이 그 성전의 웅장함으로 보고 감탄하는 말이 있다.
헤롯은 정치적인 계산과 개인의 야욕을 위해서 여러가지 일을
했지만, 상당히 괞찮은 면도 있었다.
* 그랬던
그가, 나이가 들어갈 수록 권력과 명예욕에 대한 집착으로 남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광적으로 심해졌다. 아내 10명중 2명 죽이고, 아들도 3명, 장모와
처남들을 죽였다.
* 바로
그런 와중에…, 동박박사가 예루살렘에 나타나서 사람들에게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있느뇨?’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소문 이 헤롯 왕의 귀에 들어갔다.
그랬더니, 7절에
보면,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 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고 말했다.
왜? 그는 자신의
권력과 인기에 도전하는 사람은 아이라고 할찌라도 살려둘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12절, “(동방박사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갔다.”
그리고, 13절에
보면, 천사가 요셉에게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라”고 말해준다, 14 요셉은
즉시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신했다.
이에 16절에 보면,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두 살 아래의
사내 아이들을 표적하여서 다 죽였다.
성경은 “(헤롯이)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다고 말한다: 우리는 헤롯의 얼마나 시기심과 망상증으로 가득차 있는지 상상할 수 있다.
헤롯은 시기심과 망상증으로 전대미문의 무서운 살육을 행했다.
* 그
당시 죽은 아이들 숫자를 산출해 보면, 두 살 이하의 남자 아이들 수십 명 정도로 추정된다. 그 아이들을 다 죽였다? 아무리 왕이지만 이유없이 아이들을 살육할
수 있는가? 믿을 수 있는가?
많은 역사가들은 그 사건의 진위를 의심했다. 게다가 이 사건은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역사가들은 그 사건을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약 400년경에 마크로비우스(Macrobius)란
로마의 문학가요 철학자가 있었다. 그는 그의 책 ‘축제’(Saturnalia)
2권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헤롯은 시리아 지역의 두 살 이하 아이들을 살해할 때에 자신의
아이도 죽이게 하였다. 로마 첫 번째 황제인 아우구스도 시저 “차라리
그의 아들이 되기보다 돼지가 되는 편이 낫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he wrote: On hearing that
the son of Herod, king of the Jews, had been slain when Herod ordered
that all boys in Syria under the age of two be killed, Augustus said, “It's
better to be Herod's pig than his son” (dicta 56 Malc.)
그는
유아 살해시 자신의 아들마저 살해했던 것이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헤롯왕의 죽음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내장이 썩고 벌레가 나오고 악취와 경련이 끊이질 않았고, 그 모습은
괴물과 같았다고 적고 있다.
헤롯은 일생 출세 길을 달렸고, 권력의 최정상을 살았고, 하고 싶은것 다 해 보았다.
하지만, 역사의
눈으로, 하나님의 눈으로 그 사람을 볼때에 그는 Herod the
great가 아니라, Herod the crazy, the tyrant로 역사에 오점을
남긴 실패한 사람이었다.
* 헤롯을
통한 교훈을 생각해 보자.
1. 참된
행복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감사하고 만족하는 것이다.
헤롯을 통해 보듯이, 만족하지
못하고, 시기심에 사로잡힌 사람은 반드시 망하게 된다.
잠 30:15에서는 만족함이 없는 사람을 거머리에 비유한다. 사람이 만족함이 없어서 계속해서 가지는 것을 추구하다가 결국에는 망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많지 않고 풍족하지 못해도, 감사하고 만족하며 살면 그것이 행복이다.
참된 만족은 하나님 안에서 얻을 수 있다.
고후 3:5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2. 성도는
나이가 들어 갈수록 더욱 겸손해지고 더욱 예수님 닮아가야 한다.
헤롯은 젊었을 때에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관심했고, 사람들을 섬기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그는 갈
수록 노욕과 시기심이 가득한 사람으로 변했다.
저는 헤롯이 유아학살을 했을 때의 그의 나이를 계산해 보았다.
그는 76살에 죽었는데, 예수님 탄생 약 1년 후에 죽었다.
그 당시 나이로 74세
정도인데, 매우 장수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권력과 인기가 빼앗기는 것이 두려워서 순진무구한 아이들, 게다가 자신의 갓난 아들까지 시기심과 망상증으로
살해하는 완악한 사람이었다.
* 나이가
든다는 것은 멋있다. 지혜가 생기고, 인생을 관조하고, 더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다.
성도는 나이 들수록 권력도 내려놓고, 시기심도 내려놓고, 더욱 겸손해 지는 사람이다.
왜? 성도는 예수님을
닮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윗왕과 사울왕, 둘
다 죄 많고 허물많은 사람이다.
다른 점은? 사울, 그는 처음에는 순수, 겸손했다. 하지만, 그는 나이 들수록 권위적, 욕심,
질투, 고집 투성이 사람이 되어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다윗은 나이가 들어 갈수록 더욱 순수해져갔다. 죄 지으면 눈물 흘리며 회개했고, 하나님의 법궤가 들어올 때, 모든 권위의식 다 내어 버렸고 춤추며 어린아이처럼 순수했다.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사도 바울의 말 고후 4:16 “우리의 겉사람은 날로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로워져야 할 것이다.”
3. 이렇게
잔인하고 믿기 어려운 사건 뒤에는 사단의 음모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유아학살 사건이 또 어디에 나오는가? 모세 탄생시...
구약의 가장 위대한 사람 모세가 탄생 할 때에, 바로 왕은 당시 태어나는 모든 히브리 유아들을 살육하였다.
그것은 사단이 모세의 탄생을 저지하기 위하여서 바로의 마음을
조종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탄의 무서운 음모와 인간의 완악한 책략으로붜 모세와 예수님을 구원하셨다.
* 결: 왕의 명령으로 모든 유아들을 표적해서 죽이라는 그 명령은 힘없는 백성으로서는 도저히 피해갈 수 없는 무서운
사건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잔인한
왕의 명령같이, 토마호크 미사일 같이 끈질긴 놈이 우리를 추적해서 고통에 빠뜨리고 죽이기 위해서 달려들때도
있다.
그런 때에 우리는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자.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의 백성을 도우셔서 시련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구원하신다.
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하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현재같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람들을 절망에 빠트리고 죽이기
위해서 우리들을 표적하여 달려 든다고 할찌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자.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눈동자같이 지켜 주시고, 병아리가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품어 주신다.
그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승리하시는 성도 여러분 되기 바란다.